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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 관련 논평에 새삼 눈길이 쏠리고 있다. 3일(현지 시간) 그는 열병식을 “아름다운 행사”로 평하며 “아주, 아주 인상적”이었다면서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연설에서 미국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매우 놀랐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내 친구다. 하지만 미국이 그 역사적인 연설에서 반드시 언급됐어야 했다. 우리가 중국을 매우, 매우 많이 도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날 백악관에서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과 공개 회담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다 나온 일련의 발언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근현대사를 둘러싼 일종의 역사전쟁이 예고된 모양새다. 시진핑 시대 들어 공산당 위주의 항일 서사가 한껏 고조돼 왔으나 이게 실제와 동떨어져 있다는 관점이 최신 학계에선 우세하다. 중일전쟁기 항일전쟁 국면의 주역은 장제스의 국민당이었으며, 마오쩌둥이 주력한 일은 국민당 힘빼기를 위한 일본과의 뒷거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중·일 국교 정상화 때 마오가 배상금을 사양한 이유라는 것이다. 심지어 기회 있을 때마다 일본 침략이 공산당 승리로 이어졌음을 인정해 ‘마오의 아이러니’로 불릴 정도다.
베이징 열병식 개시 즈음에 나온 트럼프의 트루스쇼셜 게시글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단 시 주석을 향한 말투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워장에게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한 다음 “당신(들)이 미국을 상대로 공모를 하는 동안”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함께한 3국의 만남을 ‘미국 상대의 공모 기회’로 풍자한 셈이다. 원문 “~ as you conspire against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에서 ‘you’란 단수·복수 겸용이니 문법·문맥상 ‘중국’이거나 ‘3국 전부’를 가리킬 수 있다.
이날 백악관 취재진 앞에서 트럼프는 중국이 그런 대규모 열병식을 벌인 이유를 안다며 “내가 보길 바랐을 것이다. 보고 있었다”면서 경쾌하게 자문자답했다. 수십년 만에 한자리에 모인 북·중·러 정상들 회동으로 3국 공조 강화 전망이 무성한 가운데 성공적인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다운 화법을 뽑내기도 했다. “그런데 난 그들 모두와 아주 관계가 좋다. 얼마나 좋은지 앞으로 1∼2주 사이에 보게 될 것”이라며 궁금증을 자아낸 것이다.
3월 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백악관 방문이 파행으로 끝나자 파이낸셜타임스가 “트럼프는 모든 상황을 마치 트럼프TV인 것처럼 연출해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AP 등 몇몇 매체에선 트럼프를 ‘스탠드업 코미디언’에 비유했다. 이번에 트럼프는 미리 트루스소셜 글에서 “시 주석이 과연 대단히 적대적인 외국 침략자로부터 중국의 자유 수복을 위해 미국이 제공한 엄청난 지원과 ‘피’를 언급할지 큰 의문”이라고 써둔 다음 이튿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켜 중일전쟁을 종식시킨 사실 관련해 중국 측 역사 인식의 부재를 비판한 것이다.
미국은 항일전쟁 주역이던 국민당의 중화민국을 지원하고자 1941년∼1942년 비밀리에 군 조종사들을 의용군으로 보낸 바 있다. 미 육군·해군·해병대 소속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휴가·사직’ 형태로 전역시킨 뒤 민간 계약자(중국·버마 항공회사 소속) 신분의 조종사 약 100여 명과 정비 인력 200여 명을 파견해 일본군 폭격으로부터 중화민국 임시수도 충칭에 방공망 역할을 했으며 버마~중국대륙 보급로를 확보한 것이다. 자체 집계로 8개월간 일본 항공기 299대를 격추했다(미국 측 손실은 14대). 미국 정부는 자국민 설득을 위해 장제스 부인 숭메이링이 1943년 2월18일 미 의회에서 연설하게 함으로써 지원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화민국과 함께 일본 격퇴에 중요한 군사적·정치적 기여를 했다. 트럼프의 중국 열병식 행사 관련 발언은 양국이 공유한 역사에서 미국 공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불만을 토로한 정치적 메시지다. 또한 여기엔 중국의 오늘날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도움이 미국으로부터 나왔다는 트럼프의 기존 시각이 녹아 있다. 그는 첫 임기 시절부터 탈냉전 이래 미·중 밀월의 황금기가 사실상 미국을 병들게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왔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것만 뽑아도 여러 번이다.
2016년 대선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유세에서 트럼프는 민주당 빌 클린턴 행정부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승인한 이후 미 제조업의 쇠퇴와 공장 폐쇄 원인이 급속히 심화됐음을 지적했다. 2018년 1월 미 무역대표부(USTR) 의회 보고서 논평에선 미국이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한 게 실수였으며 중국의 시장 개혁을 결과적으로 막았다고까지 봤다. 그해 3월 무역조치 서명 기자회견에서도 WTO 출범 이후 미국이 치른 경제적 비용과 미국에 불리하게 작동한 점을 거론했다. 또 2019년 7월~9월 내내 여러 개 트윗(현 엑스)으로 중국에 대한 ‘개발도상국’ 지위 허용을 특혜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 역사전쟁으로 확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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