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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인재의 ‘탈(脫)한국’ 현상이 국가 경쟁력을 흔들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4~23년 해외로 나간 이공계 석·박사는 10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학부생까지 합치면 36만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EB1·EB2 비자를 발급받은 한국인은 6000여 명으로 2017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았다는 통계도 나왔다. EB1·EB2는 고학력·고숙련 과학기술 인재와 가족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비자다.
지금은 ‘팍스 테크니카(paxtechnica)’ 시대다. 과학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패권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외국 정상이나 지도자들이 해외를 방문할 때 방문국 정부보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먼저 찾는 일이 목격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중심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방증이다.
세계 각국이 우수 두뇌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막강한 자본력과 대학 경쟁력을 확보한 ‘원 픽’ 미국이 전 세계 우수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주요 2개국(B2)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 전쟁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기술 및 인재 패권 전쟁이다.
우리 현실을 구체적 사례로 보자. 최고의 젊은 과학인재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올해의 젊은 과학자상’ ‘한성과학상’ 등을 수상하며 화학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였던 최태림 교수는 서울대에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재료공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보다 좋은 연구 환경을 찾아 떠났다”며 한국은 교수들이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제안서 작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연구비에서 지출해야 할 간접비도 많아 정작 연구에 쓸 돈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의 처우를 개선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ETH는 매년 일정한 연구비를 보장해 주기 때문에 따로 제안서를 쓸 필요없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고, 대학원생이나 박사후연구원 급여도 대학에서 따로 지급하는데 그 수준이 한국 박사후연구원보다 약 3.5배 높다 보니 대학 내 교수와 연구원들이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혁신적인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다 좋은 연구 환경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과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 교수 외에 응용물리학계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인 박혜윤 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도 미국 미네소타대로 적을 옮겼고, 허준이 교수에 이어 ‘필즈상’ 후보로 거론되던 오성진 전 고등과학원 교수도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UC 버클리)로 옮겼다.
정부도 심각성을 절감하고 ‘과학기술 인재 유출 방지 및 유치 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킨 바 있다. 사실 인재 복귀 유도책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기업도 기술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늘 강조해 왔다.
그런데도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국내 기업은 인재난을 호소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미스매치(mismatch·부조화)’ 현상에 있다. 인재가 원하는 일자리,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정부 인재 정책, 대학 교육과정이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술인재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마련돼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텐데 정부 대책은 여전히 배출 인력을 늘리는 방향에만 치중돼 있다. 이렇다 보니 박사학위자가 취업을 위해 석사 자리로 눈높이를 낮춰 가기도 한다. 이재명정부의 기획재정·교육·산업·노동부 등은 기술의 질적 혁신을 이루어 낼 소수정예 양성에 투자하는 등 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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